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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괴된 사나이 드라마 보기

볼만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중반까지 큰 힘을 지니다가 뒤로 갈 수록 납치범이 부각되면 부각될 수록 뒷심이 약간 떨어지는 느낌은 들었지만 공부가 될 점이 많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납치로 인해 차마 상상할 수도 없는 분노감이 극에 달해 있을 때
원수를 사랑하라고 부르짖는 목사(김명민)의 모습은 참 아이러니하면서도...또 그러하기에 더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원수를 사랑하는 외침은 설교라기 보다 도저히 그럴 수 없는 남자 주인공이 스스로를 향한 던지는 절규였다.
그 절규를 외치던 입 속이 너무나 시커멏게 보이던 것도 단순한 나의 착각일까?
마치 그 시커먼 입 속의 색깔이 그 타들어가는 마음을 보여주는 공허한 동굴 속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그 후 각자 살고 있는 부부의 모습
과거와 전혀 상반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남자주인공의 모습
더구나 의대를 다녔다는 설정이나 의료기구를 만들어 파는 설정은 나중에 남자주인공이 자신의 벌어진 이마 상처를 직접 꼬매는 것과 잘 맞물려 나쁘지 않은 인물설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로 나는 이런 종류의 연쇄살인범이나 납치범이 나올 때 그가 공개되지 않으면 않을 수록 우리에게 더 많은 공포감과 두려움, 궁금증을 주고 그런 점이 우리를 이야기의 끝까지 몰입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 속 납치범이자 살인범이 크게 드러나고 장면 비중이 큰 것은 놀라운 점이었다.
대체로 많은 드라마에서 범인의 비중이 커지고 그를 보여주면 보여줄 수록 그의 정체가 예상한 거보다 섬세하지 않게 설정되어서 납득하기 어렵다든지 너무 쉬운 대상으로 전락한다든지 해서 공포감과 두려움을 오히려 내려놓게 하고 그 결과 드라마를 시시하게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드라마 '히트'의 살인범이 그런 대표적인 예-
하지만 이 영화의 살인범은 만천하 그 존재가 드러나 있지만 생각보다 캐릭터가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아이의 존재를 안 택배기사 부부를 아주 쉽게 무참하게 죽이는 모습에서 보이지 않은 공포 못지 않은 눈에 보이는 공포감을 줘서 관객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아쉬운 것은 -이건 남자주인공도 마찬가지인 이야기이지만- 그 8년이란 세월을 수많은 아이를 납치하고 살해한 그라면 상당히 용의주도한 놈인 게 분명한데 이 영화에서 그의 너무 잖은 살인과 허술한 처리(칼에 찌른 형사가 죽지 않았다든지 스피커를 안 팔은 사람을 죽이고 별 처리 없이 나오고 오줌까지 누고 나오는 -길 그리썸이 오면 바로 남아있는 소변이나 머리카락 등등으로 바로 잡히지 않았을까 의심스러운-모습)은 인물의 일관성을 떨어뜨리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살인을 하지 말아야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은밀하게..혹은 좀 더 섬뜩할 정도로 죽이는 과정이나 죽이고 난 후의 용의주도함을 보여주었다면 좀 더 매력적인 살인범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런 살인범의 허술함은 이야기가 뒤로 가면 뒤로 갈 수록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그가 욕을 하는 부분이다. 차라리 나는 살인범이 욕을 입에 담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남자주인공의 욕하는 모습과 상반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어 좋다는 생각도 들고 그의 분노가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가는 타입이라면 남들이 쉽게 하는 욕과 같은 걸로는 분노가 안 드러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약간 화나는 정도의 것이라면 오히려 여유롭게 웃어주었다면 그리고 그 극에 치달았을 때 분노감이 살인이란 형태로 나타났다면 더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의 중반에서 주인공은 납치범의 요구에 의해 돈 가방을 준비해야 했고
도저히 돈을 준비할 수 없던 주인공은 부인의 숨통을  끊어버리고 보험금을 타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한다.
상당히 충격적인 -사실은 상상할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선택이었지만
그만큼 그만큼 그의 절박함이 드러나는 선택이었기에
그렇게까지 해서 돈을 준비하는 그에게 많은 기대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후의 이야기가 약간씩 긴장감이 줄어드는 걸 느꼈다.
생각보다 쉽게 찾아낸 범인의 경로와
범인의 취향, 범인의 집...
좀 더 범인이 치밀하고 그래서 피말리게 그걸 파헤치는 남자주인공의 절박함을 기대한 나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그게 그리 쉽게 쓰이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상당히 신선했던 것은 순순히 자신의 집의 문을 열고 자신을 미행한 남자주인공에게 물까지 건네던 범인의 천연덕스러움이라고 할까 ...매우 기억에 남는 장면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 후에 납치범이 좀 더 잔인하고 견고하게 움직였으면 더 긴장감있게 이야기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남자주인공에게 발길질이 아닌 도끼로 찍으려하고 최대한 그걸 막아내려 애썼다면 더 긴장감이 있지 않았을까!
도망친 아이를 잡아 목을 조르던 장면에서 조금 더 죽기 직전까지 갔다면 ....
그래서 그를 돌로 치던 남자주인공의 모습이 더 절박하게 연기가 되었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 장면 후
마지막 장면은 사실 김이 많이 빠졌다. 나는 차라리 아이가 아직은 말을 좀 더듬는다든지 어휘가 좀 부족하다든지 낯설어 눈을 피한다든지 그랬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거의 8년간 온전한 대화상대가 거의 없어 말을 하는 것도 글로 적는 것도 어려움이 있던 아이가 너무 말을 또박또박 해내는 역시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부담스러웠다. 너무 많은 말과 뚜렷함을 드러내는 것은  오히려 그 의도가 너무 잘 보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부감을 느끼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설탕이 잔득 든 김밥...나쁜 설정은 아니지만 입으로 뱉지 않고 눈으로 바로 그 의도를 드러낼 수 있는 다른 무언가였다면 더 감동적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뭐...이렇게 봤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보는 내내 집중해서 꽤 재미있게 본 작품이다. 약간의 저런 부분이 보완되었다면 하는 작은 아쉬움이 남을 뿐...여러가지 부분에서 배울 점이 많은 영화이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밤이다. 푸드덕푸드덕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참 맛있는 저녁식사도 얻어먹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도 보냈다.

커피를 두 잔 마신 탓인지
대화 중 열심히 스터디해보자는 이야기 때문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부터
심장이 이상할 정도로 두근된다.
흐음...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긴장감일까
아니면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거에 대한 기분 좋은 떨림일까?
그래,
압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힘내자.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푸드덕푸드덕

나는 한때는 참 드라마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열망했고 그 꿈을 위해 행동을 하며 참 행복했다. 그러나 현실은 돈 없이는 어느 것 하나 시작하기 힘든 것이었으며 그 시기 돈이라는 걸 벌기 위해 발부둥치던 나는 '처음'이었던 거라서 그런지 타고 나길 인간관계에는 잼병인 건지 같이 일하던 사람들에게 참 많이 상처받았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1년만 돈을 벌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지라고 마음을 먹고 공부를 중단했을 때 마음 속엔 진정으로 원하던 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일을 하며 1년 7개월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은 가슴 속에 뛰던 꿈에 대한 열망이 저만치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내 가슴은 무안하리만치 덤덤하다.

나는 그 마음 속 혼란도 잠시 접어두고 그래도 하지 않은 후회는 말야야지 하는 마음으로 서울로 올라왔다. 휴대폰 D-day기능으로 보니 오늘이 서울로 올라온지 16일째이다.

16일동안 참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교차했던 것 같다. 작가의 길을 가겠다고 큰 소리는 쳤지만 전혀 창의적인 생각이나 열망으로 반짝이지 않는 내 가슴이 당황스럽고 서울이란 곳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말투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 느낌이 낯설고-이런 점이야 원래 살던 곳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아직 돈은 있지만 고시원 월세를 걱정하며 마트에서 편안하게 과자 하나 고르지 못 하는 내 자신이 우울해지기도 했다. 어느날은 돈을 벌기 위해 이력서를 넣었던 곳에 갔다고 이름 모를 대학과 이름 모를 학원의 강사 경력에 대한 비웃음을 당했고, 뭔가 수상해보이던 면접장소에서 석연치 않은 고용인을 만나 고민스럽기도 했다. 하루 하루 지날수록 일단 내 먹고 살 일을 해결해야 마음 놓고 글을 쓸텐데하고 생각하다가도 과연 일을 하면서 동시에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돈벌이에 대한 다급함이 마음을 짓누르기도 하고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이리저리 이력서와  함께 내야 할 연간계획서를 써봐도 여전히 이런 거따위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하루 하루를 이력서 쓰는 것에 소비해 버리는 것이 갑갑하기만 하다.

어제인가 그저께인가 누군가가 죽었단다.
'장래가 촉망받는' 시나리오 작가가 하루 하루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 병마에 시달리다가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그렇게 죽었단다.
며칠째 밖에도 안 나가고, 아니 못 나가고 이력서니 연간계획서니 쓴다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나는 지쳐있었고, 그녀의 소식은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그녀는 대학에서 몇년간 시나리오에 대한 공부까지 한 사람이었고 무려 '장래가 촉망받는' 작가라는 칭호라도 붙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작가로서의 어떠한 재능도 확인되지 않은 고작 기초반 소료나 다 인 대본 하나 제대로 못 써본 작가 지망생 아니 -지망생이란 표현도 거창하다 -작가 지망하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가 호명해주지 않으면 잘 느끼지 못 하는 낮은 자아존재감과 무슨 일이라도 뛰어들어 돈을 벌지 않으면 쉽게 나에 대한 가치조차 의심스러워하는 나에게 그녀의 소식은 더 비참하게 와닿았다.

마트에서 650원짜리 과자에 가던 손을 내려 호주머니에 찔러놓고 나올 수밖에 없던 나지만 나는 적어도 밥도 김치도 먹을 수 있다. 내가 살 수 있는 방을 구할 수 있을지 보증금과 월세가 염려스럽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오늘의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나에게는 있다.
나는 오늘 외출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햇살은 눈이 부셨고 목도리를 하지 않고 걸을 만큼 괜찮은 날씨였다. 나는 나를 위해 맥도날드에서 5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샀다.
천천히 천천히 햩아먹은 아이스크림은
참 맛있었다.


통증 푸드덕푸드덕

내가 왜 집중을 할 수 없는지 깨달았다.
굉장히 오랜 된 것이고 이미 예전에 알고 있던 것이지만
다시 깨닫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이삼십분만 앉아있어도 골반부터 시작해서 오른쪽 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통증 때문에 집중하기가 너무 힘들다.
디스크가 아닌 골반 쪽 통증이고 검색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문가가 몇 없는 분야의 병이라는 건 대략 추측해볼 수 있었지만
지금 내 형편에서는 한푼한푼이 너무나 아쉬운 상황이고
검사며 약이며 치료비를 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십년간 달고 산 통증인데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조만간 로또에 당첨된다거나 -라고 하지만 로또 사본 적도 없으니 물건너 갔다- 갑자기 부자가 될만한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은 아무것도 기대할 수가 없다.

어제부터 울던 괴이한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아기의 울음인지 고양이의 울음소리인지 헷갈릴 만큼 독특한 소리를 내며 창가에서 전해지고 있다. 그 고양이도 분명 뭐 힘든 일이 있는건지...

내 생일이 6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통증과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돈 한푼이 아쉬워 나를 위로해줄 과자 하나도 못 사는 나는
오늘도 채용된다고 해도 염려스러울 곳에 용기를 내어 낼 연간 계획서를 꾹꾹 적어나가고 있다.
생각처럼 비참하진 않다.

푸드덕푸드덕

고등학교 시절 사회 선생님이 우리가 와글와글 떠드는 걸 한참 보시더니
부산에 처음 왔을 때는 고등학생들이 수다떠는 모습이 너무 억세게 들려 마치 서로 싸우는 것처럼 들렸었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이야기가 별로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 살다 온 사람에게 그렇게 싸우는 것처럼 들릴 만큼 우리가 나누던 대화의 어투가 강했다는 말인가라고 생각하면서 한귀로 듣고 흘릴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말이 무슨 뜻일지 서울에 올라온지 일주일 가량 지나면서 실감하고 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정 없고 쌀쌀맞게 느껴지는 서울 사람들의 말투들이 하나 둘 귀에 익숙해지면서
아, 이게 이 사람들의 말투구나. 쌀쌀맞은 감정이 섞인 게 아닌, 오늘날 서울 방언의 특징 중 하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한동안 그 말들에 위축되어 가던 내 가슴이 조금은 펴지는 것 같다.
반복에 의한 학습...
오늘은 서울에 대해서 한 가지를 배우게 된 것이다.

-글을 다 적고 보니 며칠 전 동사무소에 주소이전하러 갔다가 직원에게 들었던
'이젠 서울에 사니까 서울말 써야지?' 라는 농담 섞인 핀잔에 대해 다시 떠오른다.
글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서울에 살면 서울말을 쓰도록 강요하는 사회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기에 오히려 특별히 서울말을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데 올해 서울에 올라와서 느끼는 것은 방언을 쓰는 것이 별다른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몇년 전과는 확연히 다를 정도로 늘어난 외국인들과 함께 하며 서울이라는 도시가 다문화에 대한 포용도가 더 커진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동사무소에 저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라는 생각과 함께 '아직도 서울말 강요하는 사회'는 유효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살짝 들었었다. 뭐 어째든 서른인 나는 예뻐 보일 필요도 없고, 부산말이 주는 불이익이 있다면 그대로 감수하면서 내가 30년간 담아온 내 감정과 생각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는 이 말을 버리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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